외가가 상명이고, 명월, 한림, 화순에 외삼촌이 살았다. 금악은 눈보라 너머의 마을 느낌으로 내게 남았다. 초등학생 시절 겨울방학이었다. 상명리 외할머니네 집에서 혼자 놀기 심심해서 오후 늦게 걸어서 명월리까지 걸어갔다. 한참을 걷는데 눈보라가 일기 시작했다. 돌아가기에도 멀어 눈보라 속을 뚫고 명월리 외삼촌 집까지 걸었다. 그때 눈보라가 금악리 쪽에서 불어왔다. 금악은 눈의 나라였다. 마침내 외삼촌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날은 이미 저물어 외사촌들이 잠자리에 든 시간이었다. 외숙모가 혼자 걸어온 나를 보고
시네필은 영화광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영화(Cinema)와 사랑(Phil)이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다. 주로 블록버스터 영화 보다는 작가주의 영화를 선호하며, 영화 지식이 상당한 경우엔 공동체 안에서 아마추어 영화 평론가 대우를 받기도 한다. 나는 시네필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721시간, 제가 영화를 본 시간이다. 살면서 1개월은 영화만 본 것과 같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영화까지 합치면 아마 900시간은 나올 것 같다. 영화가 좋냐고 물어본다면 좋아한다고 바로 답할 수 있다. 유치원 선생님이 비디오테이프로 보여준 인어공주가 처음
우리에게 자살이란 무엇일까?최근 개그우먼의 극단적인 선택은 온 국민에게 충격적인 소식이었다.자살은 우리 곁에 너무 가까이 있지만, 우리는 자살을 나 자신의 일로 고민하지 않고, 그저 들려오는 다른 사람의 비극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자살을 한 개인의 우울증이나 한 개인의 비극적 선택으로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살이라는 사회현상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멈춘 것 같지만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자살을 결심하는 이들이 계속해서 생기고 있다. 2010년도에는 10만명당 31.2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2019년도
개강한지 한달도 안 지났지만 교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는 상황이 벌어졌다.3월 14일, 몇몇 학생들이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했으므로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으라는 문자를 받았다는 사실을 학내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올렸다. 교내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학생들은 확진자가 어떤 수업을 듣는지, 동선은 어떻게 되는지를 이야기하며 확진자의 신상 캐기에 나섰다. 확진자에 대한 억측과 악의 가득한 험담이 이어지자 경상대학 학생회장은 에브리타임 및 인스타그램에 관련 공지를 올렸고 확진자 학우에 대한 추측이나 비방을 삼가했으면
WHO의 코로나19 팬더믹(전염병 대유행) 선언은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을 깡그리 무너뜨렸다. 혹자는 ‘인간에 대한 자연의 경고’라고 말한다. 그 거센 여파는 사회 전반에 몰아치고 있다. 코로나 사태는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의 허약한 구조와 치부를 드러내는데도 일조하는 중이다.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급격한 전환기적 기로에 선 우리나라 대학의 위기가 여실히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다행이라 할 만 하다.최근 한 신문은 ‘무너지는 지방대’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올해 대입에서 전국 4년제 대학 200곳 가운데 신입생 미달
모두가 힘든 코로나19 시대에도 봄꽃은 여기저기서 화사하게 불붙기 시작했다. 따스한 봄기운에 피어나는 꽃들을 진화하기에는 역부족이다.며칠 전, 제주대학교 입구에 있는 벚꽃 길을 지나며 ‘와! 3월 중순인데 벌써 꽃이 다 피었네’하고 감탄했다. 코로나로 힘들었던 지난 1년도 지나간 시간 속에 겨울과 함께 묻혔으면 하는 바람도 가졌다.어느 시인은 ‘지난겨울이 추울수록 벚꽃 잎은 더 붉다’고 했다. 필자가 대학시절, 우연히 들렀던 중고책방에 있던 시집에서 읽었던 글이다. 짧지만 강력한 이미지로 남아 아직도 기억이 또렷하다.필자는 남들보다
햇살 좋은 곳에서는 벚꽃이 벌써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요즘이다. 그늘과 양지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듯 햇살은 벚꽃의 개화도 조절하고 있다. 꽃이 피는 게 무슨 대수라고, 해마다 봄이 오면 마음이 설레는 걸까. 꽃향기가 매캐한 시절이 있었다. 꽃은 흐드러지고 매운 연기와 함성과 눈물이 어우러진 교정, 봄은 춘투라고 불리는 무언가와의 투쟁과 함께 왔었다. 투쟁의 대상이 무엇이었건 봄은 그렇게 소란스럽게 왔었다.침묵의 봄이다. 1년 이상 지속되는 코로나19,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인식의 현실화, 그리고 지독히도 끈덕진
혁명적으로 진행되는 미디어 시대의 여러 변화를 다룬 KBS 다큐멘터리 를 관심 있게 보고 있다. 는 허위 정보, 디지털 성범죄, SNS 알고리즘, 디지털 페어런팅, 가상 현실 등 5가지 핵심 시사 주제에 대해 전문가의 깊이 있는 설명과 통찰을 제시한다. 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새로운 미디어 시대에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존재, 혹은 모든 미디어 현상을 충분한 지식과 정보에 근거해서 바라보고 해석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는 ‘중간’을 뜻하는 미디엄(mediu
2월 24일에 있는 1학년 수강신청을 앞두고 학내 커뮤니티 에브라타임 새내기 게시판에는 ‘수강신청 어떻게 해요?’, ‘시간표 어떻게 짜는 거예요?’와 같은 질문들이 많이 올라온다. 인생 첫 수강신청을 앞둔 새내기들의 걱정스러운 마음이 느껴진다. 새내기들의 질문을 보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발을 내딛을 때가 떠올랐다. 제주대학교에 합격해 예치금을 입금하고 한 달 가량 연락이 없어 학교에 제대로 등록됐는지, 혹시 예치금 입금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2월이 되자 학과 학생회에서 새내기 배움터의 참가 유무
재수를 한 친구는 좋은 대학이 자신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하며, 소위 말하는 ‘탑텐’에 드는 대학을 가는 것이 큰 메리트라고 여겼다. 나는 실수로 과제를 제출하지 못하면 스스로에 대한 짜증이 났다. 그 실수로 인해 떨어질 미래의 점수를 참을 수가 없었다. 대학에서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혹은 얼마나 잘했는지가 환산된 점수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지만, 취업시장에서 내 대학생활은 그 숫자만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위 사례들은 우리나라의 학벌주의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개인은 사회가 만들어낸 사회를 전부 담고 있기 때문
시각장애인들이 사는 세상은 얼마나 많은 물음표가 달릴까? 최근 ‘스타트업’이라는 드라마가 유행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한국의 실리콘 밸리에서 성공을 꿈꾸며 스타트업에 뛰어든 청춘들의 성장 드라마다.이 드라마에서는 화면 인식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이 음성으로 카메라 앞에 보이는 사람, 사물, 글자 등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눈길’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었다. 이처럼 기술의 성장을 통해 우리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하지만 우리는 시각장애인의 편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아야
2020년은 코로나바이러스 원년으로 불려야 하는 해로, 모든 활동이 영향을 받았다. 교육 또한 오랫동안 익숙해왔던 교실에서의 대면 수업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대다수의 수업을 진행했다. 초중등 학교는 일 년여 간의 온라인 수업으로 학력 저하를 염려하는데, 대학의 경우는 그나마 교실 수업이 모두가 아닌 자율적 학습 또한 중요하기에 걱정은 덜하지만, 여러 문제는 노출되었는데 2020년 신입생은 개학부터 대학에 적응하는 기간을 가지지 못하고 후배 신입생을 맞아야 한다. 졸업하는 학년은 그나마 자기 관리가 가능했기에 영향이 적었지만 4년여의
한글은 말소리를 담는 문자로서 표음주의 원칙을 지킨다. 「훈민정음」 해례 서문에는 한글이 닭울음 소리까지 표기할 수 있다고 자신감 있게 썼다. 소리대로 적을 수 있는 한글은 개별 글자를 적는데 효과적이다. 한글은 한국어의 특성으로 인해 영어보다 컴퓨터 처리가 어렵다. 영어는 모두 다 띄어 쓰지만 한글은 ‘은’ ‘는’ ‘이’ ‘가’ 조사가 붙어서 나온다. 어떤 조사를 썼느냐에 따라 말의 의미가 달라진다. 한글은 단어와 단어가 결합될 때 발음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은 단어와 단어가 결합될 때 ‘사이시옷’을 어떻게 사용
2월과 3월은 각각 졸업과 입학의 계절이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이 끝나가는 2월과 3월은 힘든 과정을 마무리했다는 기쁨과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하는 설렘의 계절이기도 하다.학교 입장에서 본다면 머물렀던 학생이 나가고 새로운 학생이 들어오는, 대체돼 들어오고 나가는 과정을 통해 항상 새로운 변화와 도전이라는 또 다른 과제를 안고 있다. 사회의 입장에서 본다면 숙련된 인재들이 퇴임 등으로 물러나고 그 자리를 젊은 인재들이 자리를 메우는 순환적 관계라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앞으로는 대학과 사회 여건이 매우 다르게 변화될
인간은 누구나 커뮤니케이션 한다. 커뮤니케이션은 세상과 교류의 첫 출발선이다. 커뮤니케이션은 “전달자와 수용자 간에 공통의 상징체계를 사용하여 정보와 지식, 사상, 의견, 느낌, 신념 등을 공유하거나 공통화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의미한다. 여기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그 속성을 파악하는 데 있다. 속성은 8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커뮤니케이션의 보편성이다. 커뮤니케이션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면 언제, 어디서든 발생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커뮤니케이션이 미치지 않는 것이 없다.둘째, 커뮤니케이션의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적신호가 켜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사상 초유의 유치원, 초ㆍ중ㆍ고등학교 등의 개학 연기를 하면서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한 행동 지침으로 사람 간의 접촉을 줄이자는 캠페인이다.정부가 권고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국민 행동 지침 내용으로는 다음과 같이 있다. 첫 번째, 모임이나 외식, 행사, 여행 등은 연기하거나 취소하기가 있다. 특히 해외에서 식사 시 감염 사례가 다수 보고되고 있
처음 제주대학교에 입학했을 때가 기억난다. 제주대가 중산간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 한 채 두꺼운 옷을 챙겨가지 않은 것. 그래서 한동안 매서운 제주 바람에 고생했던 것. 너무 추운 나머지 어깨를 웅숭그리고 다녀서 담이 올 것 같았는데 그런 정신없는 상태로 교내에서 눈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나무들은 나뭇잎이 새파랗게 활기차게 서 있던 것과 그 모습을 보고 더욱 추위를 느끼고 떨었던 것까지. 시간이 지나 봄이 되자 교내 곳곳을 분홍빛으로 물들인 벚꽃과 새초롬한 연둣빛으로 익은 꽃봉우리들이 자주 눈에 띄는 것을 봤다. 그제야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진지 한참 지났지만 경제적 이유와 사회적 조건을 핑계로 대응은 지지부진하다. 그런데 코로나19는 이런저런 핑계를 일순간 무색하게 만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상점과 카페가 폐쇄됐고 외출조차 금지되는 초유의 조치가 강행됐다. 그런데 코로나19처럼 지금 당장의 문제로 체감되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기후위기는 팬데믹보다 훨씬 큰 충격을 몰고 올 것이다. 과학적 데이터가 가리키고 있는 것, 그리고 이미 저발전국 사람들의 체험이 말해주고 있는 것을 ‘사실’로 인정한다면 코로나19에 대한 대응보다 더 강력하고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 상황도 이제 두 학기가 지나가고 있다. 사실상 2020년 2학기가 끝나가고 방학을 앞두고 있으니 거의 1년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있는 셈이다. 섣부른 감이 있지만, 대학의 팬데믹 사태도 어느덧 정산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는 여러 사설로도 확인된다. 그 글들은 각기 다양한 주장을 담고 있는 듯하지만, 결국 자기 반성과 변화 촉구의 목소리로 요약된다. 그 주장들은 외적으로는 점잖았지만 다급한 위기 상황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단말마(斷末魔)에 가까웠다. 그러면 다급한 ‘위드
11월 15일 저녁, 학생생활관은 제주도 내 63번 확진자의 접촉자가 생활관 내에서 발생해 대학 내 접촉자들이 코로나19검사를 받고 있으며, 접촉자 전원은 격리될 것이고 다른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다시 공지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이후 학생생활관에 거주하는 접촉자의 코로나19 판정 여부에 대한 공지가 없었다. 접촉자가 양성인지 음성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접촉자와 동선이 겹칠까 봐 불안해하던 학생들은 학생생활관 행정실에 직접 전화를 해서 문의하거나 건강증진센터에서 올려준 공지를 확인한 후 접촉자의 검사 결과가 전원 음성이라는 사실을 알